1
1995년부터 이영희는 꾸준히 <틈>이라는 제목과 함께 <발굴>, <생명> 등의 부제가 붙은 작업을 만들어 왔다. 이것은 그녀가 오랫동안 정성과 주의를 기울여 온 주제들로, 그녀의 작업에서 ‘틈’이라는 것은 하나의 주체가 스스로 분열을 일으킨 흔적일수도 있으며, 나와 너 사이에 있는 거리, 그리고 사건과 사건 사이 존재하는 시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2
고갱은 ‘파리에서 책을 읽는 것은 숲 속에서 읽는 것과 같지 않다.’라고 말하며 ‘에드거 포의 작품은 기분이 매우 가라앉는 장소가 아니면 읽지 않는 것이 좋다’라고 구체적인 조언도 마다하지 않았다.
2011년, 15년 동안의 작업을 담은 책을 만들기 위해 내가 이영희의 작업들을 정리하기 시작했을 때 가장 많은 어려움을 겪은 부분은 바로 그녀의 작업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장소 특정적
site-specific인 설치작업을 몇 장의 사진과 네거티브 필름을 통해서만 볼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물론 이영희는 대부분 의 작업들, 다시말해 자신이 해체하여 다른 작업으로 만든 것을 제외한 모든 작품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이 없는 작업을 촬영하기 위해 스튜디오에 옛 작업들을 설치하면서 이들을 볼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장소 특정적인 설치 작업의 미묘한 울림들을 단번에 파악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변명 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으나 앞서 말한 고갱의 조언처럼, 어느 한 특정 장소를 위해 만들어진 미술작품이 그 장소로 부터 분리되어 다른 장소에 설치되었을 때, 장소와 작품이 빚어내는 묘한 울림이 다르게 전달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제약에도 불구하고 나는 작가의 성실함으로 잘 보관된 기사들과 전시도록 그리고 그녀의 중요한 전시들에 대해 꼼꼼히 기술한, 친근하면서도 비판적인 관점을 잃지 않은 정길수의 글 덕분에 당시의 설치 상황을 대략적이나마 머릿속에 그려 볼 수 있었다. 또한 3개월에 걸쳐 여러 차례 진행 된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주요하게 다뤄 질 작품과 좀 더 나중에 살펴보아도 될 작업들을 구분하여 도록을 진행했다.

3
꽤 많은 비가 내렸던 그 해 여름, 나는 작가와 함께 선별한 200여 점의 슬라이드 필름 및 네거티브 필름의 스캔 작업을 스튜디오에 의뢰했다. 우리가 선택한 필름들 중에는 습기와 먼지에 오염된 것들이 있어서 스캔 작업 후 얼룩과 색 보정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작업을 의뢰한지 한 달 후, 스튜디오로부터 디지털 파일이 든 외장 하드를 건네 받아 컴퓨터에서 파일들을 열었을 때, 나는 마치 다른 차원에있던 -긴 침묵과 같은 갈색의 필름들 속에서 이 순간을 기다려 온- ‘불가사의 한 존재’들을 지상으로 불러 낸 기분이 들었다. 선별기간 동안필름에서 보았던 1991년 경기도 대성리 페스티벌 설치 작업은 하나의 작업을 각기 다른 각도에서 여러 컷 찍어놓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모니터 화면에서는 각 컷의 배경이 미묘하게 다르다는 것을 발견 할 수 있었고, 그제서야 이것이 생각보다도 더 넓은 공간에 설치 된 제법 큰 규모의 작업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규모와 더불어 작품의 재질과 형태도 새롭게 보였다. 필름 속에서 마른 낙엽들을 세워 놓았던 것처럼 보였던 이영희의 작업은 을씨년스러운 겨울 풍경 속을 달리는 멧돼지떼처럼 단단한 에너지를 뿜어댔다.

 

4
시간과 공간의 변화 속에 누적된 흔적,
시간과 역사의 흔적으로서의 공간,
그것의 조용한 드러남.
발굴된 유물의 파편과 파편 사이의 틈.
틈 사이를 비집고 자라나는 풀들, 현재의 조용한 진행. 그리고 순환.
현재와 지나간 시간의 공감대.


필름과 디지털 파일 사이에서 일어난 발견은 1998년도 국제죽산예술제의 설치 작업에서도 이어졌다. 당시 10여 가구가 모여 살던 경기도의 작 은 마을에서 열린 이 축제는 연극, 퍼포먼스, 음악, 미술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이 어우러진 국제 다원예술제로서 한국 아방가르드 무용의 선구자인 홍신자가 예술감독을 맡았었다. 그리고 비, 바람, 개구리 울음소리 같은 자연 현상까지도 예술 안으로 끌어들인 축제의 무대는 건축가 정기용의 작업이었다. 이영희의 작업 <발굴 : 틈>은 마을의 입구에서부터 시작해 무대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던 산 둔치까지 설치되었다. 황토로 물들인 섬유와 나무, 조명 등으로 제작된 이 작업은 한반도에 살았지만 지금은 사라진 이전의 사람 들의 거주지 혹은 먼 과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세트장처럼 보였다. 이영희는 고고학의 극적인 순간을 작품에서 재현하고자 했다.


‘발굴된 유물의 파편과 파편 사이의 틈. 틈 사이를 비집고 자라는 풀’


파헤쳐진 땅 속에서 발견 된 유물의 파편들 사이에서 풀이 자라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성의 눈이 아닌, 피사체의 껍질을 관통하는 초월적 눈으로 바라보는 그 순간, 사라진 과거는 우리 앞으로 소환되는데, 이것은 측량계로 유물의 치수를 재고, 유물의 연대를 추적하는 ‘고고학’과는 다른 고고학이다. 이영희는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물을 현재와 단절된 과거로부 터 온 사물이 아니라 과거와 우리를 연결시켜 줄 수 있는 존재로 바라본다. 그녀에게 과거는 소멸되지 않고 단지 시간 속에서 가라앉아다가 어느날 우리 눈 앞에 드러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5
......작품은 낮은 둔덕의 낮과 밤에 계속 드러나 있으며, 낮에는 햇살 속에서, 밤에는 인공조명을 통하여, 빛의 양과 방향의 변화로 다시 한번 작품 속에서의 변화와 시간성을 느끼게 하도록 할 것이다. 빛은 파편들을 전체적 이미지로 연결하거나, 또한 과거를 드러내게도(역광에 의한 작품 속의 드러내임 - 쌓여진 층들), 현재를 응시하게도(낮의 자연광을 통해 작품의 표면을 드러내기) 하며 시간의 과정을 통해 안과 밖을 복합적으로 껴안는다. 여기서 역광은 작품의 뒤 켠에서 묵직한 작품의 중량감을 가볍고 투명하게 변화시켜, 시간의 깊이 속에 한 켜 한 켜 쌓여진 흔적들을 일순 가볍게 드러내기조차 한다.
<발굴 : 틈>에서는 초기작업에서 토기의 파편과 문양으로 상징되던 ‘기억’, ‘환영’, ‘과거와의 조우’ 가 추상적이면서도 체험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토기와 전통 문양과 같은 직설적인 모티프는 사라지는 대신 시간과 공간 속에 누적된 것들을 드러나게 하는 장치로 빛이 사용된다. 이영희가 이처럼 빛으로 소환시킨 ‘과거의 환영’은 예술제 기간이었던 1998년 6월 4일부터 7일까지 단 4일의 시간 동안 지상에 존재했다. 그리고 예술제가 막을 내리자마자 작업은 바로 철수되었다.
사라진 이전의 것들과 이들의 존재를 기억하는 이영희의 작업, 그리고 남겨진 필름들. 2011년, 필름이라는 물성마저도 사라진(물론 우리는 이 필름들을 다시 보관함에 넣긴 했지만) 작업들의 사진 파일들을 정리하면서 나는 꽤나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소멸은 단지 이영희의 작업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모든 사라지는 존재들이 겪게 되는 운명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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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는 광목, 삼베와 같은 천연 섬유를 쓰게 된 이유를 여러 층위를 효과적으로 살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연극 중간 중간에 막이 내리고 올라감으로써 장면이 바뀌고 이야기가 바뀌듯이 천은 시간과 공간을 나누고, 그 주름은 시간의 층위를 효과적으로 표현해 낸다. 이영희가 마지막으로 섬유를 재료로 사용한 1998년도 개인전 섬은 이같은 섬유의 물성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설치작품이었다. 전시장의  하 공간과 1, 2층에는 그녀가 염색한 섬유와 흙으로 만들어진 조각들이 -파편이라고 하는게 더 맞을 것같은- 군도처럼 무리를 짓고 있었다. 각각 의 파편들은 거대한 연작체series-being로서, 어디든지 우리가 바라보는 지점이 바로 이야기의 시작이 될 수 있는 형태를 만들어냈다. 각각의 조각들은 독립된 개체였지만 이들은 또한 거대한 형태의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끊임없이 펼쳐지고 이어지는 형태로 공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치 거대한 시간의 순환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하고 소멸되는 개체들이 만들어낸 역동적인 지도처럼 보이기도 했다.
 

7
“때로는 이것들이 내 기억의 표면으로 올라오는 데...... 나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드러나게 될 거고, 그렇기 위해서 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조각들을 하나하나 맞춰나가는 것. 인터뷰에서 이영희는 시간 속에 부유하는 기억의 파편들에 대해 종종 이야기 했다. 그것은 양지바른 무덤가에서 놀던 어린시절의 추억에서부터 따가운 봄 햇볕 아래 대지에서부터 뭉글거리며 피어오른 아지랭이로 그녀의 눈에 풍경이 울렁이는것 처럼 보였던 일, 서울 생활에서 느낀 보이지 않는 경계와 자신을 고향 광주와 서울 두 지역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경계인으로 만들어버린 5.18,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 가라앉아 있던 여러 감정들과 기억에 대한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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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라진 장흥 토탈 야외조각미술관에서 열린 전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이영희는 전시기간 동안 내린 폭우로 다리가 끊기는 바람에 섬을 본 관객은 10명도 채 되지 않았을거라는 씁쓸한 농담과 함께 한국 사회가 너무나 빨리 변해왔으며 이 속도로 인해 우리의 기억이 얼마나 파편화되었는지를 이야기했다. 우리는 각자의 기억과 사회 공동체의 기억에서 잃어버린 조각들을 찾아내어 지금의 한국 사회의 여러 양상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보기도 했다. 되돌아보니 작가와 나눈 이런 대화는 내게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는데, 왜냐하면 한국 사회가 겪은 혼란이 어떻게 사회 공동체와 개인에게 영향을 주었는지, 다시 말해 그녀의 세대와 나의 세대 사이의 여러 양상에 있어서 격차를 만들어 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인터뷰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작업을 하는가?’와 같은 도식화된 나의 질문에, 이영희는 사회에서 자신이 맡고 있는 여러 역할들 사이에서 느끼는 세포분열과 같은 자아의 분열을 스스로 인지하는 것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일인지를 설명했다. 자신의 존재에 금이 가고, 여러 개체로 분리되는 순간에(이대로 소멸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우리는 얼마나 두려워지는가!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에서 많은 부분에 동감했지만 때로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도 있었다. 그 중 출산 과정에서 그녀가 겪었던 일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임신중이었던 그녀가 내출혈로 수술이 불가피한 상황이 닥치자 배를 열어 태아를 꺼낸 뒤 수술하고 다시 태아를 배에 넣었다. 이것은 작가에게 자신의 신체와 ‘분리?합일’되는 기묘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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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이영희는 왕겨를 작업의 재료로 사용하게 된다. 왕겨를 씻고, 건조하고 반죽으로 만드는 것 혹은 면사, 꼰사, 태모시들을 손질하고 염색하는 과정들은 작가에게 꽤나 고된 육체 노동을 요구한다. 이영희가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이같은 노동의 과정은 오늘날 미술에서 작가가 스스로 상정한 개념의 한 부분이 아니라면 예술가가 직접 이 과정을 수행했는지 아닌지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설령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진행하는 과정에 있어서 물성과 관념의 합일과 같은 고전적인 진실성을 위해 이를 충실히 수행했다 할지라도, 그렇다고 해서 관람객들이나 비평가들에게(이들이 먼저 감탄하기 전까지는) 더 많은 의미부여를 요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는 자칫 수공예적인 숙련도로 예술을 구속할 수 있으며, 예술 작품의 영적이며 관념적인 부분을 가릴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작업이 많은 부분 노동과 연관되어 있다고 말하는 이영희는 2012년 일 년 동안 시흥일대의 농경지를 매월 촬영하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흐름에 맞춰 자신의 작업을 진행해나가는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다. 그 이유는 그녀가 사유해 온 ‘틈’이라는 주제를 표현 함에 있어서, 환유적으로 또한 형태적으로 매우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는 재료가 씨에서 벼가 되고, 탈곡 뒤 왕겨가 되고, 거름이 되어 다시 땅에 뿌려지는 순환의 과정을 직접 들여다 봄으로써, 자신의 작업과, 작업에 임하는 자신의 태도를 되돌아 보고자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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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가 진행되는 2012년 동안 나는 미쳐 끝내지 못한, 즉 ‘나중에 다루기로 한 작품들’의 자료 정리와 스캔작업, 그리고 웹사이트 자료 업데이트 등과 같은 아카이브 작업을 끝내기 위해 주기적으로 그녀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매번 이영희는 시흥 농경지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에 대해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는데,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는 그다지 흥미롭지않은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대지를 여성적인 것으로 여기는 여러 문화권과 문학, 미술 작품에 대해 히 알고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문화권과 예술 창작물이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고, 대지의 풍요로움이라는 것은 매우 고전적이며 피상적인 수사법이자, 풍요로움은(기술문명의 관점에서) 모든 것에서 가능하며 그러나 풍요로움이 (신자유주의의 대립각에서) 반드시 미덕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촬영한 사진들을 보고 난 후, 어느 순간부터 현실에서 내가 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수원 근교에 있는 대학으로 출강을 했던 나는 수원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농경지를 가로질러 가곤했다. 5년이 넘도록 다닌 이 길에서, 어느날부터 나는 정신없이 지어지고 있던 아파트보다 농경지의 미묘한 변화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농경지와 아파트가 공존하는 수도권의 혼란스러운 풍경은 지금 내가 살고있는, 막연하게 안다고 생각했던 지금 이 시대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그것은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누구이며, 어디로 갈 것인가’와 같은 아주 근본적인 질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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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가가 특정한 재료를 선택하고 상당 기간동안 그 재료를 다루는데에는 어떠한 각별함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은밀한 관계가 성립되는것, 마치 영화감독과 그의 페르소나와 같은 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종종 그들은 서로 대화를 주고 받고,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위해 희생한다. 이영희가 왕겨에서 본 것은 자연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탄생하고 소멸하는(많은 경우 살해 당하는) 인류가 다양한 신화 속에서 만들어 낸 생명을 주는 위대한 어머니 여신The Great Mother의 속성이다.
아마도 이영희는 형태 그 자체로도 임신한 것처럼 배가 불러있다가 비워지는 그리고 거름으로 연료로 끊임없이 다른 무언가를 탄생시키는 에너지로 환원되는 ‘버릴게 하나 없는’ 왕겨가 바로 이 어머니 여신과 닮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이영희의 <틈> 연작체에서 왕겨로 형상화된 대지가 예민함과 관대함 그리고 규정될 수 없는 원초적 에너지를 내포한 형태로 무한히 확장 될 때, 작가와 그의 재료는 긴밀히 연결되어 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틈은 거리감이 아닌 두 존재가 맞딱뜨리는 지점이자, 각자의 역사성이 면면히 읽혀지는 곳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각자의 시간이 하나로 만나는 그 곳에서 그녀의 관념이 물질에 덧붙여짐으로써 이영희의 삶과 예술, 이 둘이 합일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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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새롭게 지어진 거대한 건축물들이 들어선 거리를 거닐며 니체는 한 세기 뒤에는 이 건축물들이 어느 하나라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며, 이 건축물들을 지은 건축가들과 그들을 지지한 여론도 반드시 전복될 것이라고 되뇌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시대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니체는 납득할 수 없는 현실뿐만 아니라 미래 또한 우리에게 희망을주지 않는 상황에서도 우리가 ‘독자적인 척도와 법칙에 따라 살도록 아주 강하게 고무시키는 존재’가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신도, 진리도 아닌 바로 우리의 ‘기묘한 현존’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소멸될 수 밖에 없음에도 지금 바로 이 순간 우리가 존재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납득할 이유를 찾고 싶어하고,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하는 우리의 실존은 이성으로는 쉽게 납득되지 않는 ‘기묘한’것이다. 하지만 니체는 바로 이 기묘한 현존이야말로 우리를 강한 삶의 의지로 이끄는 힘으로 보았다.
이영희에게 ‘틈’이란 바로 이 기묘한 현존이다. 개인으로서, 작가로서 불안감과 함께 자각되는 ‘존재의 의미없음을 어떻게 넘어 설 것인가?’ 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그녀는 이 틈에서 끊임없이 ‘가난한 손’으로 자신의 실존의 타당성을 증명해 나간다.
20세기 중반 전쟁과 기존가치의 붕괴, 모더니즘의 속도 속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모두가 고민했던 그때, 실존주의 철학가들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 세상에 던져진 인간은 자신이 처한 이 부조리한 상황에서 자기 자신 밖으로, 미래 속으로 스스로를 내던짐으로써 (진정으로)실존하게 된다는것’을 다시 한 번 발견한다.
지난 일년동안 작가는 시흥의 대지가 자연의 순환 속에서 삶의 에너지를 증명하는 것을 보면서 그녀가 어릴적 고향의 풍경을 통해 깨달았던 진리를 다시 한번 떠올렸을 것이다. 다양한 가능성을 향해 그녀 스스로를 내던짐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영속시킬 수 있으며 그녀의 예술이 진정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을.

12 Fragmentary Throughts on Crack

Kihyun Camille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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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 1995 Lee Younghee has consistently produced works titled The Crack, Excavation, and Life. These are themes Lee has for long carefully and earnestly pursued. The ‘crack’ in her work can be the trace of a subject’s self-disruption, the gap between you and I, and the time between events.
 

2

Paul Gauguin gave us the concrete advice “You’d better not to read Edgar Allan Poe’s book if not in a place with a subdued mood”, saying “Reading the book in Paris is not same as reading it in a forest.”2)

One of the hardest things I faced in 2011 when arranging the pieces she has done over 15 years was the fact that I could see her site-specific pieces, most important part of her work, through only a few photographs and negative-film. Of course, Lee retained almost all her works, except for works she created into other pieces after dismantling them. I also had the chance to see her previous installations when she set-up works for photographs at her studio. However, it was often impossible to grasp her site-specific works’ subtle resonance. That is why, as Gauguin advised, when a work of art produced for a specific site is set in another place, we may feel its subtle resonance and the place where it is installed changed.

Despite lots of restrictions I could roughly envision what her installations were like with the help of news and magazines articles, and exhibition catalogs she kept, and the writing of Jeong Gilsoo meticulously describing her important exhibitions from his friendly yet critical perspective. In editing her exhibition catalog I could classify works to be treated significantly and works to be addressed later,3) while having a few interviews with her over three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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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summer of 2011 when there was quite a lot of rain, I asked a photo-studio to scan 200 slide-film and negative-film I had chosen with the artist. As some were contaminated with dust and moisture, they required color compensation and stain removal after scanning. One month after I requested the scanning work, when I opened the file I received from the studio, I felt like summoning enigmatic beings from the brownish film that seemed to have stayed in another dimension. Installation work displayed at the Daeseongri Festival in 1991 I saw through film looked like a work of art photographed from many angles. But, I found the backgrounds on the monitor differed slightly, and then realized the work was a considerably large-scale work set in a space broader than I expected. The quality of the material and form alongside its size appeared anew. This work, which looked like a rise of dried leaves in photographs, exuded solid energy like a flock of wild boars rushing through a desolate wintry scene. 

4

Traces accumulated in changing time and space 
Space as the trace of time and history 
And, the serene revelation ?
Cracks between excavated artifacts 
Grass growing from the cracks 
A present quiet progression and circulation 
The bond of sympathy of the present and the past
4)

Lee’s discovery between film and digital file was also displayed at the Juksan International Arts Festival in 1998. Led by Hong Shin-ja, a forerunner of Korean avant-garde dance, the festival took place in a small village of Gyeonggido with about 10 houses arranged together. It was an international, pluralist arts event fusing diverse genres of art such as the theater, performance, music, and fine arts. The stage of the festival, with natural phenomena like the sounds of rain, wind, and frogs, was designed by architect Chung Guyon. Lee’s work was set from the village entrance to the hillside encircling the village like a folding screen. This work of fabric dyed with red clay, wood, and lighting was like an abode of those living on the Korean Peninsula long ago or a film set against the background of a remote past. Lee intended to represent a dramatic archeological moment. 
“Gaps between the fragments of excavated relics, grass growing from the gaps”?
It is scientifically impossible for plants to grow between the gaps among fragments of excavated relics. At the moment we see them with the transcendental eyes, not the eye of reason, the vanished past is summoned to us. This may be archeology different from the archeology measuring relics and detecting the years when they were produced. Lee sees such excavated artifacts as the things relating us to the past, not the things from the past severed from the present. For the artist, the past is something remaining sunken under time, without being ruined, appearing before our eyes som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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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tantly revealed during day and night, the work will make viewers feel change and temporality with changes in the light’s amount and direction, under sunlight by day, and artificial lighting at night. Light connects fragments within a whole image, unveils the past (revelation of work by backlit accumulated layers), enables viewers to gaze at the present (revelation of the work’s surface through daytime natural light), and embrace interior and exterior through a process of time. The backlight here lightly reveals traces layered one by one in the depth of time, transmuting the work’s weight to something light and transparent.5)

In Lee represents ‘memory,’ ‘illusion,’ and ‘an encounter with the past’ symbolized with earthenware fragments and patterns in her early pieces appearing in abstract, experiential shapes. Light is used as a device to unveil the accumulated in time and space instead of direct motifs such as earthenware and traditional patterns. The illusion of the past Lee summoned with light existed in this land for only four days during the art festival - from June 4 through June 7, 1998. After the festival had come to an end, it was removed. I felt sad while arranging the films of Lee’s work, remembering the extinguished and their existence and other films left; the work of 2011 whose film has disappeared, since extinction is the fate of all vanishing things including me, let alone Lee’s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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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Younghee says she uses natural fabrics like cotton and hemp cloth since these can show many layers effectively. As a scene and story changes when the curtain goes up and down in the theater, the cloth divides time and space, and its creases eloquently express the layers of time.

exhibited at her 1998 solo show for which Lee last used fabric material was an installation that most exquisitely represented the fabric’s material quality. In the basement, the 1st and second floors of the gallery pieces made up of her dyed fabrics and earth ? that could be more properly called debris ? bunched together like a group of islands. Each fragment formed an enormous series in which a narrative could start from anywhere. Each piece was an individual unit, but a part of a gigantic form. This work blurs the boundary of space with its endlessly unfolded, continued form. This also makes space look like a dynamic map composed of individual elements that are constantly created and extinguished in the cycles of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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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se come up at times to the surface of my memory. ----- These are something that cannot be placed into words. However, I thought these would be revealed some time, so I should not forget them.”6)

In an interview Lee often talked about assembling pieces one by one or fragmentary memories floating in time. The memories are mainly about her playing around a grave as a child; shimmering landscapes due to spring haze; an invisible border she felt while living in Seoul; May 18 Gwangju Democratic Movement, with which she became a marginal person between Seoul and Gwangju, her home; and many emotions and reminiscences submerged in her inner 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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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changing views on the show held at the Tot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open-air sculpture gallery in Jangheung, Lee suggested that Korean society has changed so rapidly and our memories have been fragmented at tremendous speed, with a bitter joke about viewers who had seen The Island being less than 10 due to rainstorms. We tried to understand many aspects of Korean society with the fragments found in each memory and the community’s memory. Looking back on the past, I think talks with her were very useful for me because I had an opportunity to consider how upheavals in Korean society made an impact on community and individual, and how these caused gaps between her and my generation in many respects.

Asked why she continued her work despite many difficulties in the last interview, Lee accounted for how hard it is to recognize disruptions of the self in the many roles she had taken. How much we become afraid at the moment our existence cracks and divides into many individuals (with the idea that we might become extinguished). This is the suffering we all go through. I agreed with most of what she said, but I could not understand it all. One unforgettable story is what she underwent during her pregnancy. When Lee was required to have a surgical operation due to internal hemorrhage, it is said, she had an operation after taking out the fetus, and took in the fetus again after an operation opening the belly. This was a weird experience the artist felt, of being separated from and becoming one again with her 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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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 the 2000s Lee used rice husks as one of the materials of her work. Hard physical labor was required in the processes of washing, drying, and making rice husks into paste and the processes of addressing and dying cotton thread, twisted thread and ramie cloth. The execution of the laborious process is of no matter if it is not part of the concept she has conceived. Even if the artist had faithfully executed her work for truth such as oneness of physical property and concept, she cannot ask viewers and critics to consider her work as significant (before it is in advance admired). That is because we live in an age when art may be confined to craft dexterity, and its spiritual, conceptual aspects may be undermined.

Nevertheless, Lee says many parts of her work are related to physical labor. She had planned and executed a project to photograph farmlands in the Siheung area and to carry out her work in accordance with change there for the year 2012. Lee intended to look back on her work and attitude toward her work by representing the theme of ‘crack’ while observing the processes of cycles - sowing seeds, seeds grow into rice, rice turns into rice husks, and rice husks become man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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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2012 when the project was in progress, I regularly called at her studio to arrange materials concerning her work, scanning work, and archiving work, while updating materials on her website. Every time she talked about change in Siheing farmlands, most of it was not so interesting to me, as I was brought up in an urban area. I knew about many cultures, literature, and artworks considering the earth feminine, and others not considering the earth womanly. I thought then the earth’s richness was just very classic, superficial rhetoric, and abundance could be achieved in all fields (from the perspective of mechanical civilization), but such abundance was not always virtuous (from the viewpoint of opposing neoliberalism).

After seeing the photographs she had taken however, something I could not see became visible. I got off the train at Suwon Station, and took a taxi to the university where I lectured at the time. One day I began observing subtle change in farmlands rather than apartments under construction along the path I had taken for five years. The confused scene in which farmlands were in a mixture with apartments made me question our era: “Where do we come from?, Who are we?, Where are we go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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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think there is something special in the materials Lee has chosen and addressed for a considerably long period of time. I have also witnessed some secret relationships between the artist and her materials like the relationship between a film director and his characters. They talk, understand, and sacrifice for each other. What Lee discovers in rice husks is the qualities of the Great Mother who was born and extinguished in the enormous flow of nature, created by mankind in diverse myths, and gives humans life. The artist probably thought the rice husks are constantly being transformed into energy, turning the rice into such things as manure and fuel, and the rice husks that have nothing to discard resemble this Great Mother.7)

What’s obvious is when the earth, represented with rice husks in Lee’s Crack series is infinitely expanded into a form connoting sensibility, generosity, and indefinable primal energy. The artist and her materials create a clandestine relationship. The gap between the two is not the distance but the point where the two encounter each other and their history is read. Lee’s life and art are integrated at the place where they meet when her notion is added to her mate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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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ing the street that was lined with newly constructed buildings in the late 19th century, Friedrich Nietzsche expresses that none of the buildings would still be standing one century later, and that the architects who designed the buildings and public opinion that favored them would be surely overturned. Nietzsche also adds that there is “a being who is intensely encouraging us to live in accordance with independent measure and principle” even in an unacceptable reality and a desperate situation. The being is neither God nor truth but our ‘weird presence’. Our existence that tries to discover the reason for being and wants to prove its presence despite its inevitable demise, is ‘something odd’ and unacceptable to our reasoning. However, Nietzsche sees this weird presence is the force leading us to our strong will for life.8)

For artist Lee Younghee, the ‘crack’ is this weird presence. Lee tries to prove the validity of her existence with the “poor hand” to look for an answer to the question “How can I overcome the sense of insignificance together with anxiety?” as an individual or an artist.

In the mid-20th century when many were concerned with “Who the human being is?” amid the collapse of established values and the speed of modernism, existentialist philosophers rediscovered that “We humans are projected into the world regardless of our will truly exist by projecting ourselves to the outside of ourselves or the future.”9) While witnessing that the earth of Siheung proves that the energy of life in the cycles of nature over the last year, Lee is probably remembering the truths she found through the scenes of her home as a child. Lee again realizes she can perpetuate her existence by flinging herself onto diverse possibilities, and her art may attain validity.

<틈>에 대한 12개의 단상
박기현 / 독립큐레이터 vitrine by AAM 편집자